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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아침·저녁·휴일까지 책임지는 돌봄”
거점형 돌봄기관 시범운영, 유보통합 시대의 새로운 돌봄 패러다임
돌봄의 사각지대,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돌봄’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를 키우는 가정의 일상이고, 부모가 안심하고 일터로 나설 수 있는 기반이며, 나아가 국가가 미래세대에 대해 어떤 책임 의식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영유아 돌봄 시스템은 제한적인 시간, 분절된 서비스 구조, 기관 간 협업 부재 등의 문제로 많은 가정이 ‘돌봄 사각지대’에 놓이게 했습니다.
아이돌봄 서비스
특히 맞벌이 가정, 한부모 가정, 비정규직 근무자 등은 아이의 보육 공백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자주 부딪힙니다. 유치원은 오후 2~3시면 하원을 권장하고, 어린이집도 저녁 7시 이후에는 돌봄이 종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학이나 휴일에는 대다수 기관이 운영을 하지 않아 부모들은 사설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연차를 내야 하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고자 등장한 것이 바로 교육부와 11개 시도교육청이 함께 추진하는 ‘거점형 돌봄기관 시범운영’ 사업입니다. 이 사업은 단순히 돌봄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돌봄 서비스의 구조를 재설계하고, 공공기관 간 협업을 통해 아이 중심·가정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획기적인 시도입니다.
유보통합 시대의 새로운 모델, 거점형 돌봄기관
‘유보통합’이라는 개념은 어린이집(보건복지부 소관)과 유치원(교육부 소관)의 이원화된 운영 구조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정책 흐름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통합이 아니라, 아이의 발달과 가정의 현실을 중심에 두고 돌봄과 교육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거점형 돌봄기관은 바로 이 유보통합의 철학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현장 기반의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함께 지역 내 돌봄 거점을 만들어, 기관 간 경계를 허물고, 돌봄 자원을 효율적으로 연계해 학부모 맞춤형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번 시범사업에서는 총 52개의 기관이 거점형 돌봄기관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중 30개는 어린이집, 22개는 유치원입니다. 각 거점기관은 인근 2개 이상의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과 협약을 맺고, 그 기관의 아동들도 돌봄 서비스 대상에 포함시켜 운영합니다. 이를 통해 실제 아동의 수요에 기반한 통합적 돌봄이 가능해졌으며, 시간대별·가정 상황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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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시간, 서비스, 운영체계의 변화
거점형 돌봄기관의 가장 큰 특징은 단연 ‘시간 확장’입니다. 기존의 돌봄이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6시 사이에 국한됐다면, 이번 제도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심지어 토요일과 휴일, 방학 중에도 돌봄이 제공됩니다. 즉, 아침 7시 이전 등원, 저녁 8시 이후 하원이 가능해지는 셈입니다.
이는 단지 시간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근무 형태가 유동적인 부모나 조부모에게 실질적인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닙니다. 특히 병원, 제조업, 소방 등 교대근무 직군이 많은 지역에서는 이런 형태의 돌봄 서비스가 절실합니다.
더불어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돌봄’에서 벗어나, 교육적 요소가 결합된 ‘특성화 프로그램’이 함께 제공됩니다. 미술, 음악, 독서, 신체활동, 자연 탐방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전인적 발달을 지원하며, 기관별 특성에 맞는 콘텐츠 구성도 가능합니다. 이를 통해 부모는 양질의 돌봄 환경 속에서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게 되고, 아이 역시 단조로운 돌봄 시간을 흥미롭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
시범사업 지역, 어떻게 선정되었나?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시범사업의 실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단순히 기관의 규모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돌봄 수요는 높은데 공급이 부족한 지역, 즉 ‘돌봄 취약 지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했습니다.
농어촌 지역, 산업단지 인근, 신도시 내 신규 공동주택 밀집지역 등 지리적 접근성이 낮거나 기존 공공 돌봄기관이 부족한 곳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또한 일부 도심 지역에서도 저녁 돌봄이 절실한 맞벌이 가정의 비율이 높거나, 주말 보육 수요가 많은 곳들도 포함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총 11개 시도교육청이 선정되었고, 각 교육청은 공모와 심사 절차를 거쳐 지역별로 적절한 기관을 선정했습니다. 각 거점기관은 지역사회의 수요와 현실을 반영해 맞춤형 돌봄 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점진적으로 시범운영을 시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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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지원과 컨설팅
제도가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정책 선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에 교육부는 시범기관 운영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우선 거점형 돌봄기관으로 지정된 기관의 원장을 대상으로 2024년 4월 30일에 사업 설명회를 열고, 사업의 목적, 운영 방침, 행정 절차, 기관 간 협업 구조 등을 자세히 안내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협업 모델, 시설 개방 방식, 책임 분담 등에 대한 실질적 논의도 이루어졌습니다.
더불어 교육부는 ‘거점형 돌봄 지원단’을 구성해, 사업 운영에 필요한 상담, 행정 지원, 컨설팅, 우수 사례 공유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예정입니다. 특히 제도 초기에는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지원단의 역할이 현장 안착의 핵심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기대효과: 아이·부모·기관 모두를 위한 제도
이 사업을 통해 기대되는 효과는 다양합니다. 먼저 부모 입장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믿고 맡길 수 있는 돌봄 인프라가 마련됨으로써 육아 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특히 근무 시간이 일정하지 않거나, 가족 돌봄 여력이 부족한 가정에는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변화가 예상됩니다. 단순한 보육에서 벗어나 체계적이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경험하며, 또래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성과 감성 발달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역 내 다양한 기관을 접하면서 보다 넓은 교육환경 속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기관 입장에서도 협업을 통해 돌봄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프로그램 자원을 공동 활용함으로써 운영의 효율성과 질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지역 돌봄 공동체의 강화로 이어지며, 공공 돌봄 시스템의 신뢰도를 높이는 결과로 연결됩니다.
앞으로의 과제와 전국 확대 가능성
시범사업은 말 그대로 ‘시작’입니다. 이 제도가 전국으로 확대되고 지속 가능하려면,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가장 큰 이슈는 인력 문제입니다. 돌봄 시간 확대에 따라 추가 인력이 필요한데, 이를 어떻게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배치할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또한 기관 간 협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행정 부담, 책임 분담 문제, 아동 이동 간 안전 문제 등도 세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특히 학부모의 이해와 협조도 중요하기 때문에,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홍보와 안내도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육부는 이번 시범사업을 바탕으로 제도의 운영성과를 분석하고, 우수 사례와 보완점을 정리한 후 향후 전국 확대 여부를 결정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업이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정책모델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뒷받침과 예산 확충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결론: 새로운 돌봄 생태계의 시작
거점형 돌봄기관 시범운영은 단지 한 해의 사업이 아니라, 유보통합 시대의 새로운 교육·보육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중대한 전환점입니다. 돌봄이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아이의 미래를 위한 환경이라는 인식 위에서, 이번 제도는 돌봄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지역사회 중심의 협력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부모가 일과 가정을 모두 지킬 수 있는 사회, 아이가 어디에서든 따뜻하게 돌봄 받을 수 있는 사회. 거점형 돌봄기관은 그러한 미래를 향한 조용한 혁신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