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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하루에 하나, 감정이 담긴 물건과 이별하다
“오늘은 무엇을 비워볼까.”
나는 그렇게 매일 아침, 커피잔을 내려놓고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은 비움은 버림이 아닌, 나와의 대화였다1일 1물건 비움 일기: 비운 자리마다 나를 채우는 법에 대해서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1일 1물건 비움 일기, 말은 간단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면 복잡한 감정들이 엉켜 있음을 매번 느꼈다.
처음 비운 것은 작은 키링이었다. 여행지에서 친구와 함께 산, 조금 유치하지만 귀여웠던 키링. 열쇠에서 떨어져 나온 지는 오래되었고, 색도 바래 더는 쓰지 않지만,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의외로 선명했다.
그 안에는 웃음, 설렘, 조금은 서툴렀던 우정, 그리고 이젠 멀어진 관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냥 쓰레기통에 넣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물건을 손바닥에 올려두고 잠시 감정을 바라보았다.
1일 1물건 비움은 그렇게 단순히 ‘버리는’ 일이 아니라,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왜 이걸 지금까지 갖고 있었을까? 이걸 보면 어떤 마음이 드는가? 그 물건을 떠나보낼 수 있을 만큼 나는 자랐는가?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오늘 비운 물건’ 사진 한 장, 그 물건과 관련된 추억, 그리고 그날 느낀 감정까지. 그렇게 매일 쓰는 비움의 일기는 점점 ‘정리 일기’에서 ‘감정 일기’로 변해갔다.
물건을 통해 내가 어떤 관계를 맺어왔고, 어떤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우는 건 결국 나를 돌아보는 일이었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집착, 그리고 나를 지키는 마음
며칠째 이어진 비움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버리기 어려운 물건들’에 눈길이 갔다. 낡은 다이어리, 펼쳐보지 않은 엽서들, 언젠가는 사용할 거라며 쌓아둔 스티커, 끊긴 펜들. 쓰임은 없지만, 손에서 쉽게 놓아지지 않았다. 그 속에는 어떤 정서적 ‘안전장치’가 있었다.
가장 어려웠던 건 대학 시절의 노트였다. 몇 년간 가지고 있던 그 노트에는 중요한 정보도, 다시 참고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손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 노트를 버리는 일은, 그 시절의 나를 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니, 그 노트에는 ‘기억’보다는 ‘불안’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그땐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나는 왜 그걸 못했지” 같은 자책의 흔적들이 그 안에 고여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물건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미련이 아니라, 그 물건이 내 감정을 보관해주는 창고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했던 기억을 정리하지 못했기에, 물건이 그것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조용히 그 노트를 사진으로 남기고, “그때의 나는 그 나름대로 잘 해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 후, 종이 재활용함에 넣었다. 그리고 느꼈다.
비움은 나 자신을 내치는 게 아니라, 내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품어주는 행위라는 것을.
비워진 자리, 그곳에 피어난 온기
이제는 꽤 익숙해진 비움의 루틴. 내 방에서 물건이 하나씩 사라질수록, 역설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더 선명해졌다.
물건이 적어지자 정리할 시간도 줄고, 찾느라 낭비되는 에너지도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들어온 것은 현재를 느낄 수 있는 여유였다.
텅 빈 탁자 위에 찻잔 하나를 두고 앉아있는 순간, 창문을 열어 바람 소리를 듣는 순간, 그런 작고 소박한 시간들이 내 삶의 중심이 되어갔다.
비움은 나를 소박하게 만들었고, 그 소박함 속에서 나는 더 단단해졌다.
일기장에는 이제 더 이상 “이걸 왜 버릴 수 없었을까”가 아니라, “나는 왜 이 물건을 쥐고 있었을까?”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그 질문은 물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결국 ‘삶을 어떤 방향으로 살고 싶은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비움의 여정이 끝났을 때, 내 방에는 적은 물건이 남겠지만, 내 안에는 더 많은 이야기와 온기, 그리고 나에 대한 이해가 남을 것이다.
에필로그: 오늘, 당신은 무엇을 비우겠습니까?
비움은 ‘가벼워지는 연습’인 동시에 ‘나를 돌보는 루틴’이다.
그 어떤 셀프케어보다도 깊고 조용하게 내면을 정리해준다. 감정이 쌓여버린 물건을 손에서 놓을 때, 우리는 동시에 스스로를 조금씩 더 자유롭게 풀어낸다.
어쩌면 당신도 지금 책상 한켠이나 서랍 속에, 오래전 감정을 보관한 물건을 하나쯤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물건을 꺼내어 바라보고, 잠시 대화를 나눈 뒤, 비워보는 건 어떨까.
비운다는 건,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을 인정하고 보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생기는 여백은, 언젠가 당신이 꼭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찾아올 진짜 공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하루, 단 한 가지라도 좋다. 그 감정, 그 물건, 그 기억 하나를 조심스럽게 놓아보자.
비운 자리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채워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더 단단하고 따뜻한 나를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