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아닌 ‘재능’으로 연결되는 사람들

"혹시 수학 과외 가능한 분 계실까요? 중2 아이인데, 개념부터 다시 잡아주실 수 있는 분이면 좋겠어요." 오늘은 재능 나눔 커뮤니티 체험기 돈 없이 따뜻해지는 사회를 마주하다에 대해서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지역 커뮤니티 앱을 통해 올라온 이 글 하나가 나의 재능 나눔 체험의 시작이었다. '무료 과외'라는 말이 처음엔 낯설게 느껴졌다. 나 역시 생계를 위해 과외를 해 본 적이 있었기에, ‘재능을 나눈다’는 것이 현실에서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댓글엔 “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요즘 시간 좀 남아서요” 같은 말들이 줄지어 달려 있었다. 무언가 대가 없이 사람을 돕는다는 것. 이 따뜻한 기운에 이끌려 나도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나는 주말마다 한 중학생을 만나 수학 과외를 시작했다. 처음엔 서로 어색했지만, 수업이 거듭될수록 자연스럽게 웃음도 많아졌고, 아이의 성적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고맙다며 김치를 한 통 싸 주시기도 했고, 나는 그 작은 정성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경험은 내게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흔히 ‘가치’를 돈으로만 환산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1시간의 과외가 10만원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내겐 어렵지 않은 일이, 누군가에겐 삶의 질을 바꾸는 변화가 된다. 이게 바로 재능 나눔의 힘이다.
동네 장보기 대행, 작은 도움에서 피어난 따뜻한 관계
두 번째 경험은 ‘장보기 대행’이었다. 동네 커뮤니티에서 “무릎 수술 후 당분간 외출이 힘든데, 시장 장보기 좀 도와주실 분 계실까요?”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마침 시간도 있었고, 우리 집 근처 시장에서 장을 자주 보던 터라 어렵지 않게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그분과 만난 날, 구체적인 장보기 리스트를 메모한 쪽지를 건네받았다. 시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고, 다시 그분의 집에 들러 전달해드렸다. 그녀는 연신 고맙다고 하셨지만, 정작 내게 더 고마운 시간이 됐다.
장을 대신 봐드리는 일을 몇 번 더 하면서, 그분과 나는 차 한 잔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삶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혼자 살아가고 있었고, 예전엔 미술을 가르쳤던 선생님이었다.
어느 날은 손수 그린 엽서를 내게 선물해 주셨다. “젊은 사람이 이렇게 마음 써주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냐”며 웃으시는 모습에서 나는 오히려 따뜻함을 배웠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진심 어린 관계가 이렇게 싹트는 것이구나 싶었다.
‘장보기 대행’은 더 이상 ‘심부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일상에 손을 내미는 일이었고, 그 손을 잡은 사람과의 마음의 교류였다.
금전 없는 교류가 가져온 진짜 ‘풍요로움’
재능 나눔 커뮤니티에 참여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근데 그거 하면 뭐가 돌아와요?”였다. 사실 나도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몇 번의 경험을 거치며 나는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가 흔히 ‘돌아온다’고 할 때 기대하는 건 대부분 물질적인 보상이다. 하지만 재능 나눔은 ‘교감’과 ‘신뢰’라는, 어쩌면 훨씬 더 귀한 것을 돌려준다.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나눈다는 감정, 필요로 하는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자부심, 그리고 그로 인해 내 삶도 더 따뜻해졌다는 확신이 남는다.
재능 나눔을 하며 알게 된 사람들과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감기 조심하세요”, “다음에 또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같은 소소한 안부 인사가 오가는 삶은 이전보다 훨씬 풍요롭고 따뜻하다.
돈이 없으면 불편한 건 맞다. 하지만 돈이 있다고 해서 마음까지 채워지는 건 아니다. 재능 나눔을 통해 나는 ‘돈 없이도 따뜻해질 수 있는 사회’의 가능성을 몸으로 느꼈다. 이 사회의 곳곳엔 아직도 나눔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모인 작은 커뮤니티는 분명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눈다는 건 결국 내 삶의 결도 바꾸는 일이다. 그건 단순한 봉사를 넘어 ‘같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첫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