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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병원이 문을 닫았는데요.”
이 말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상황 보고일 수 있지만, 어떤 환자에게는 삶의 기록이 단절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병원진료기록조회
진료기록은 단지 질병을 치료한 이력을 넘어, 개인의 의료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필수 자산이다. 입원일자, 수술기록, 처방내역, 영상검사 결과, 진단서 등은 환자의 건강 상태를 가장 명확하게 증명하는 ‘의료 문서’다. 하지만 이 문서는 대부분 ‘의료기관’이라는 민간 주체가 보유하고 있으며, 그 기관이 문을 닫는 순간 환자는 기록을 더 이상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런 현실이 어쩔 수 없는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마침내, 이 오래된 불편이 끝났다.
보건복지부가 2025년 7월부로 ‘진료기록보관시스템’을 공식 출범시킨 것이다.
의료정보는 누구의 것인가?
폐업 병원과 환자의 권리 사이에서
의료법 제22조는 진료기록부를 포함한 의료기록을 최소 10년 이상 보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기관이 폐업하는 순간, 이 의무를 어떻게, 누구의 책임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행할지는 늘 불분명했다.
실제로 보건소에 보관 위탁된 의료기록은
보관 장소의 물리적 한계
기록 열람의 행정적 제약
개인정보 보호에 따른 절차 복잡성
등으로 인해 환자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어떤 경우는 보관 자체가 누락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의료기록은 의료기관의 소유가 아니라 환자의 권리임에도, 현실에서는 환자 스스로 그 기록에 접근하기 힘든 구조였다.
보건복지부가 ‘진료기록보관시스템’을 도입한 배경에는 이런 구조적 비대칭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즉, 정보의 비대칭이 환자의 의료 선택권과 건강권을 침해하는 구조를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진료기록보관시스템’, 기술과 제도의 결합
진료기록보관시스템은 단순한 웹사이트가 아니다.
이 플랫폼은 폐업 또는 휴업한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진료기록을 국가가 수집·보관하고, 환자가 온라인을 통해 직접 열람하거나 발급할 수 있도록 만든 통합관리 시스템이다.
병원진료기록확인
핵심 운영 원리
폐업한 병원이 진료기록을 보건소에 제출
보건소 또는 중앙 의료기관이 전자화
진료기록보관시스템https://medrecord.mohw.go.kr 업로드
환자가 온라인 본인인증 후 열람·발급 가능
이 과정에서 정보보호와 진본성 검증을 위한 기술이 다층적으로 적용되었다.
Login :: 휴•폐업 진료기록보관 시스템
남은 시간: 00분 00초 인증번호 요청
chmr.mohw.go.kr
암호화된 데이터 저장
QR코드 기반 발급 문서 진위 검증
블록체인 기반 위변조 방지(개발 예정)
클라우드 기반 이중 백업 시스템
사용자는 공동인증서나 간편인증(PASS, 카카오, 네이버 인증 등)을 통해 본인 확인 후 포털에 접속하면 진료기록의 조회, 다운로드, 출력이 가능하다.
현재 서비스는 발급 수수료 없이 무료 제공되며, 향후 문서당 발급 비용이 소액 부과될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 기존 오프라인 발급 대비 접근성과 비용 측면에서 현저한 개선이다.
디지털 전환의 결정적 진보
기록이 이어져야 건강이 이어진다
‘기록의 연속성’은 곧 ‘치료의 연속성’이다. 의료는 과거 병력에 기반해 현재의 증상을 해석하고, 미래의 건강을 설계한다. 그런데 그 기록이 사라졌다면? 의료의 방향성도 사라진다.
의료기관의 휴·폐업은 해마다 1만 곳 이상에서 발생한다. 특히 단기 개원 후 폐업하는 1~2인 의원급 병원이 많다. 이런 경우 환자는 의료기록을 확보하기 어렵고, 다음 병원에서 처음부터 진료를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진단 반복, 검사 중복, 시간 낭비, 비용 증가, 환자 스트레스. 의료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인 상황이다.
휴폐업의료기관진료기록
진료기록보관시스템은 이런 의료 단절을 방지하고, 환자 중심의 지속 가능한 의료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반이 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그 가치가 빛난다.
보엄금 청구: 진단서, 수술기록 필요
장애등급 심사: 과거 질병 경과 확인
장기요양 신청: 노인의료기록 증빙
이직·해외이주 등: 건강 증명 필요
법적 분쟁 증거 자료: 교통사고, 산업재해, 의무기록 진위 확인
이제 이러한 상황에서
"병원이 없어서 기록이 없다"는 말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남은 과제와 앞으로의 확장성
물론 아직 완전하지는 않다.
진료기록보관시스템이 모든 의료기관의 기록을 자동으로 수집하지는 못한다.
과제 1. 보관대상 확대 필요
현재 시스템은 일정 규모 이상의 의료기관 또는 보건소 위탁 대상 병원에만 적용된다.
1차 의료기관(개인 의원), 소규모 요양병원, 정신병원 등은 아직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과제 2. 기록 표준화 부족
병원마다 진료기록 포맷이 제각각이다.
문서 양식, 명칭, 첨부 자료의 차이가 커서 통합 데이터화가 어렵다.
이를 해결하려면 EMR(전자의무기록) 표준화와 강제적 연계가 필요하다.
과제 3. 디지털 소외계층 접근성 강화
고령층, 장애인, 정보 약자는 온라인 인증이나 검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복지부는 향후 읍면동 주민센터, 복지센터와 연계한 오프라인 발급 지원 창구를 운영할 예정이다.
의료정보의 민주화, 이제 시작이다
진료기록보관시스템은 단순한 온라인 서비스가 아니다.
이는 국가가 의료정보의 소유와 접근 주체를 ‘의료기관’에서 ‘환자’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다.
정보의 주권은 이제 공급자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넘어가고 있다.
이 변화는 우리 삶의 중요한 의료 순간들을 공공이 기록하고, 환자가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5년 전 종합병원에서 받은 수술 내역을 찾고 싶다면
문을 닫은 한의원에서 받은 침 치료 기록이 필요하다면
오래된 병력으로 보엄을 청구하고 싶다면
이 주소 하나로 가능해졌다.
마무리하며
정보를 가진 자가 권력을 갖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건강을 지킨다.
그리고 그 시작점이 바로 ‘기록’이다.
진료기록보관시스템은
의료정보 민주화, 디지털 의료 혁신, 환자 중심 건강관리라는 세 가지 가치를 한 번에 실현하는 미래형 의료 인프라다.
그 시스템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하지만 그 방향은 분명하다.
기록은 개인의 것이며, 언제든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보장해야 할 것은 단지 치료의 기회가 아니라,
그 치료가 남긴 기록에 대한 접근권이다.